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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고통에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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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6-18 12:07 조회6,73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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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5일, 세계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나라 네팔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8700여 명이 사망하고 8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잦은 여진과 산사태 등의 우기로 인한 피해로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은 이미 예측했던 재난이었습니다.
2010년에 일어난 아이티 대지진 이후 지진 전문가들은
"다음 차례는 네팔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규모는 8.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으며,
심지어 한 달 전 프랑스의 한 연구팀은 네팔 현장조사를 통해
지진의 규모와 발생지역까지 정확하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을 보수하거나 다른 곳으로 대피할 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 네팔의 국민은
그 피해를 오롯이 입었습니다.
또 지진 피해를 복구할 경제적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네팔에서는
현재 전염병, 인신매매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벌어오는 돈이 국내총생산의 28.8%를 구성하는 네팔 현지에는
복구 작업을 할 젊은이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수많은 국가에서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는 있다고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기가 다가오는 네팔에서는 산사태가 계속 일어나고 있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시신이 썩어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공포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네팔 지진으로 인한 참사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얼마 전에 우리가 이와 유사한 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2010년 1월,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규모 7.0의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무려 23만여 명이 사망하고 약 2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었죠.
아이티 지진 역시 일어날 것을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판자 몇 개와 흙더미를 집으로 삼아야 했던 아이티의 힘없는 국민은
대책없이 그 피해를 온몸으로 입어야만 했습니다.
지진 피해를 복구할 사회적 기반이 전무했던 아이티에서는
이후 전염병과 사회질서 악화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아이티의 인구는 전 세계 0.01%밖에 되지 않지만,
콜레라 발병률은 지진 이후 전 세계의 50%가 넘는다고 하니,
그 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8만여 명이 난민캠프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어린아이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재앙에 수많은 국가에서 원조를 약속했지만,
그 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액수만 전달된 채 아이티 사람들은 점점 잊히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너무나 동일해 보이는 재앙은 단순한 우연일까요?
5년 전, <인디고잉> 22호에서는 아이티의 지진 피해를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에는 우리 역시도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했지요.
아이티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집과 사회 안전시스템이 있었다면
그렇게나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진이라고 했지만 그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술하게 지을 수밖에 없었던 아이티의 상황,
그 상황을 만들었던 세계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저 연민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는 것에
한없이 죄책감과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낍니다.
단순히 연민의 감정으로 도우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그들에게 지금 먹을 식수는 제공해줄 수 있겠지만,
결국 또 다시 무너져야 할 허술한 집을 짓는 돈을 주는 것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결코 이로운 사랑이 아니겠지요.
그저 어느 정도 도와주었다는 자기 만족감에 도취할 뿐일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어떤 마음가짐이, 어떤 태도가, 어떤 열정이
이로운 행동과 삶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미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민하지 않고, 그들에게 정말로 빚진 마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은 것과는 반대로
기부한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하는 마음도 함께 건네겠지요.
그것은 엄청난 차이일 것입니다.
나의 삶을 사랑한다면, 나의 행동이 부정의와 선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 이로울 수 있는지 가장 정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티와 같이 너무나 거대한 일은 좌절감마저 들만큼 힘겹고 막막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집을 지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단지 이기적인 만족감으로 끝나지 않을 도움(어쩌면 보상)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인디고잉> 22호, “아이티 사태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기사 중에서


아이티 지진 이후 5년이 흘렀습니다. 5년 동안 세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죠.
하지만 이 두 나라의 운명과 그에 대처하는 세계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똑같이 그저 반성을 촉구하며 구호물품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현대의 기술은 지진이 어느 시기에 어떤 강도로 일어날 것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지만,
정작 예측한 사실이 초래한 재앙에 대비할 인류의 책임감은 그만큼 진보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요.

세계에는 지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수천 수억 원을 기부할 능력을 갖춘 수많은 선량한 사람이 있지만,
정작 이들은 지진 피해를 증폭시킨 빈곤을 퇴치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소극적입니다.
혹은 네팔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우리의 옷과 신발을 만들어내느라
값싼 노동력을 강요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네팔의 지진 피해 역시 인재라면,
이는 아이티의 지진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았던 전 세계인이 만든 재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 고통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과오에 대한 성찰은 덧없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성찰은 다시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대책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팔 지진참사는 세계인들에게 이 고통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제대로 성찰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고통받고 있는 네팔 사람들, 실의에 빠져 있는 아이티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구할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생각하고 성찰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의 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1. 네팔이 가난한 나라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왜 가난한 나라에 지진,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날까요?

3. 국제사회는 왜 네팔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피해가 있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을까요?

4. 우리는 왜 네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 아무도 서로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봅시다.

5. 네팔과 같이 세계에는 빈곤과 전쟁 그리고 각종 재난 등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잘 사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에 모두 답하셔도 좋고, 몇몇 가지를 선택해서 답을 해보아도 좋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꼭 이루어내야 할 것은 이 고통의 반복과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댓글목록

홍민재님의 댓글

홍민재 작성일

1. 공업이 발달하기 힘든국가입니다. 물이 부족하고 바다가 없어 물류가 힘들고, 무엇보다 갸넨드라 국왕이 물러나기 전까지 국가재정 파탄내놓고 물러나서 20년전보다 더 살기 힘든 국가입니다 . 내진설계를 할 경우에는 부유한 국가가 될 수도 있지만, 내진설계를 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대륙판의 경계에 있고, 마찬가지로 따른 부유한 나라 (ex.일본)도 판의 경계에 있지만, 일본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라, 내진설계가 잘되있어, 같은 규모라도 피해가 달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3. 2가지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 너무나도 가난한 나라라서 답이 없어서, (2) 자신과 관련이 없는 나라라서
아마도 전 2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