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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제신문 2018년 6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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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6-26 17:21 조회3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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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윤영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7 18:54:20
  •  |  본지 30면

 

   
최근 바깥을 다니면 노란색 자전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한 공유자전거 ‘오포ofo’ 서비스 때문이다. 지정된 장소에서 빌려야 하는 기존의 대여 방식과는 다르게 휴대전화 앱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대여와 반납이 가능한 덕분에 많은 사람이 편리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보행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들이 있다. 자전거 도로는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늘어나다 보니 보행자는 계속되는 자전거 행렬에 양쪽 끝으로 밀려나 걷는 형국이다. 이러한 민원이 쌓이면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고작해야 도보를 둘로 나누는 줄을 긋는 일이 전부일 테고, 결국 보행자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경험적으로 가능하다.

이 한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의 공공시설물은 대개 특정한 사람들에게 편하고 이로운 구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선을 넓히거나 좁은 골목에 도보를 없애 보행자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것이나, 유리창이 많은 고층 건물을 지어 새들에게 위협을 주는 일 등이 그러하다. 돈이 많고, 차를 탈 수 있고, 거동이 편한 사람을 위한 도시. 과연 그런 도시를 살기 좋은 도시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난 16일 인디고 서원에서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저자인 도시사회학자 김정후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화력발전소, 철강소, 가스저장고 등 이제 쓸모 없어진 산업유산을 재생한 사례를 연구하고 소개하는 그의 연구는 산업유산이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버려진 건축물을 멋지게 개조하거나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건축물을 가장 합리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또 그 지역에 가장 쓰임새 있게 이용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즉,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런던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던 화력발전소를 전 세계인이 찾는 미술관으로 바꾼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미술관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시민들의 산책로이고, 열린 토론의 장이자 공연장이 되는 용도의 탈바꿈에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매연을 뿜어대던 지난 시대를 정리하는 것은 오래된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이 도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방위적인 고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가장 피해를 보는 대상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시민들만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치인이 바뀐다고 세상의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시민의 요구가 충분하면 제도 정치는 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인도가 아닌 차도만 넓히고, 주변과의 조화는 고려조차도 하지 않는 크고 높기만 한 건물들을 세우며, 학교는 왜 항상 직사각형의 같은 모습인가. 시민이 요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사회를 아직 간절히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정후 선생님이 부산 시민 200여 명과 만난 강의에서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것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렇다고 답한 대다수의 사람과 달리 전 세계의 500개 도시의 순위를 매겨도 그 안에 부산은 들어가지 않는 그 간극은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 수준에 만족하면, 우리 도시는 아이들에게, 장애인에게, 빈민에게, 동물과 식물에게 영원히 불편하고 위험한 도시로 남을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그런 배려들의 증거가 보이는 곳도 있지만,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이 더 많다. 지방선거가 끝났지만 민주주의는 이제 시작이다. 특정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서 시민의 의견이 다 반영된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인문학 강의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은 학교 1, 2학년 동생들에게 너무 높은 세면대를 좀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학교를 좋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이라 말했다.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의 한 모습이 아닐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를 누구를 위한 곳으로 만들어갈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일상의 정치가 시작되길 꿈꾼다.

인디고잉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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