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

[다음_스토리펀딩]"Yes, We Can." 정의로운 민주시민이 탄생하는 곳, 정세청세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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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3-18 13:37 조회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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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청세 스토리펀딩 소개글입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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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We Can.”

정의로운 민주시민이 탄생하는 곳,

정세청세를 소개합니다.

윤한결(<인디고잉> 편집진)

 

 

정세청세를 소개합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정세청세)>는 2007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한 청소년 인문 토론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전국 28개 지역에서 열린 이 행사에 전부 2만 명에 달하는 청소년이 참여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10년 전, 이 행사를 처음 만든 청소년들 중 한 명이었던 윤한결입니다. 정세청세를 처음 알게 된 여러분께서는 당장 이런 질문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이라고?’ ‘세계와 소통한다니 도대체 무엇과 어떻게 소통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지금부터 정세청세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나아가 어떤 필요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정세청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디고 서원과의 만남

인디고 서원을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1월,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겨울이었습니다. “네 또래 학생들이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이런 서점도 있다더라”는 어머니의 소개로 큰 기대 없이 찾은 곳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토론이라고 하면 초등학교 때 한 번, 반에서 사회 문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주장과 근거를 대던 기억밖엔 없었으니까요. ‘책을 읽고 그런 토론을 한다는 건가’ 막연히 생각하며 그 작은 서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난 인디고 서원은 제가 알던 다른 어떤 곳과도 다른 분위기를 지닌 장소였습니다. 이유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건물의 인테리어와 조명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런 아름다움의 목적이 청소년들이 좋은 책을 읽고 영혼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팔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히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듯했고, 사람들의 눈빛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심으로 빛나는 듯했습니다.

 

 

인문학 공부의 시작

인디고 서원에서의 인문학 공부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생각을 써와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판에 박힌 줄거리 요약이나 ‘좋았다’, ‘재밌었다’, ‘감동적이다’ 같은 뻔한 감상이 아니라, 내 생각을 써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업을 몇 번 진행하면서 저는 내 생각을 쓰려면 무엇보다 내 삶의 문제를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그 안에 내가 살면서 겪은 고민과 문제의식이 없다면, 그 글에서는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내 삶에서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일말의 답일지라도 책 속에서 찾아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돋아났습니다.

 

 

책에서 삶의 길을 묻다

그때 제 삶의 절실한 문제란 다름 아닌 고등학교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오후 4시가 되면 수업이 끝나던 중학교에 비해,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밤 9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던 고등학교 생활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학년이 된 첫날, ‘야간자율학습 동의서’를 돌리며 “여기 동의 안 할 거면 자퇴할 각오 해라.”고 말씀하시던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자율’학습이라면서 동의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적이거니와,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폭력이 담임선생님 개인의 폭력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선하고 친절한 선생님들도 ‘우리를 위해서’ 최대한 교실에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그를 위해선 사랑의 매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한창 자라나는 생명력으로 꿈틀대던 저와 친구들의 몸은 교실이라는 갇힌 공간에 마구 구겨 넣어진 채, 매일 같은 시간의 반복을 견디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저 남들도 다 하는 것이니까 참고하면 그리 못 견딜 일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하면 골치 아파졌습니다. 왜 청춘의 소중한 시간을 하루 종일 학교에서만 보내야 하는 거지? 누가 무슨 권리로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여기 묶어두는 거야? 우리는 왜 그것에 따라야만 하지? 시험을 잘 치기 위한 이런 공부가 정말 필요한 걸까? 이렇게 제 안에서 현실의 모순에 대한 물음이 커갈수록 책 읽기는 더 간절해졌습니다.

책 읽기는 이제 의무가 아니라 삶의 물음들에 답을 찾기 위한 절실한 도구였습니다.

 

 

희망의 인문학과 정세청세의 탄생

그렇게 물음 속에서 고등학교 첫 1년이 끝나고 막 2학년이 되어 인디고 서원에서 우리가 함께 읽은 책이 <희망의 인문학>이었습니다. <희망의 인문학>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빈곤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을 연구해 온 인문학자 얼 쇼리스가 진행한 ‘클레멘트 코스’라는 인문학 강좌에 관한 책입니다. 그는 빈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대물림되는 이유를 찾던 중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죠. “사람들이 왜 가난할까요”라는 쇼리스의 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

이 대답을 듣고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만든 것이 소외계층 사람들을 위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 수업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였던 거죠. ‘클레멘트 코스’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이용해 토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책에는 이 수업을 통해 수강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자존감을 되찾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 자신이 겪었던 빈곤한 삶의 근본적 원인을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정의로운 민주시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저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바로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미국 소외계층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모두 경제적으로 빈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아를 탐구할 능력을 배우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선택한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집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공부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또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대, 법대, 의대를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거나 선택하여 간 길이 아니라면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영혼의 빈민’과도 같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이 토론을 듣고 선생님께서 그날 내준 숙제는 “그렇다면 얼 쇼리스가 미국의 빈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듯이, 너희도 대한민국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너희가 할 수 있는 인문학 프로젝트를 기획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정세청세>입니다. 우리는 각자 숙제를 해 왔고, ‘대한민국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소통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 기획은 인문학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청소년들을 고려해 책 대신 우리가 토론할 주제와 연관된 짧은 영상을 선정하여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디어가 결정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세청세 최초의 기획팀이 되어 함께 이야기할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영상을 고르고, 행사 장소도 빌렸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니는 학교 친구들과 다른 부산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 홍보도 했습니다. 그렇게 열린 첫 행사는 100명 정도 청소년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우리는 수업에서 배웠던 것을 각 조의 조장이 되어 처음 만나는 친구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군가 말을 시작하면 그 사람의 눈을 쳐다봐 주기로 해요. 내가 당신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표시로요”와 같은 소통의 태도들에 대해 약속을 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서로 소개를 하고 어색한 침묵도 잠시, 하나둘씩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경청과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학교에 다니면서 느끼고 있던 문제들, 받았던 상처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꿈꾸는 삶에 관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만난 우리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온 친구와도 잘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하다니! 그건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이었고 그 순간이 꿈만 같았습니다.

 

탄생 그 이후, 현재 진행 중인 기적

그 기적 같던 정세청세가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었냐고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나날이 심해져만 가는 경쟁의 압박과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정세청세 역시 참여지역과 청소년 수의 부침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세청세에 참여하며 행사를 이끌어가는 청소년들은 쉽게 좌절하거나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유는 정세청세를 다녀간 2만 명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잃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이자 존엄한 한 개인으로서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세청세가 한 개인을 바꾸고 그 개인들이 결국 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올해도 정세청세는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할 이번 2017 정세청세의 주제는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기술”입니다.

 

 

두 개의 현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기술”이 지금 왜 우리가 함께 얘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인지 소개하기 위해, 8년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2009년 1월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첫 취임식이 열렸을 때로 말입니다. 그때 저는 정세청세 기획팀원으로 계속 활동하며 인디고 유스 북페어 팀의 일원으로 미국에 가 있었고, 워싱턴 거리 곳곳에서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는 시민들의 환호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감정이 마치 새롭게 맞이한 계절처럼 온 거리를, 온 사람들의 몸을 뒤덮고 있었죠. 그 감정의 이름은 희망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바뀌는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할 수도 있다니! "Yes, we can" 오바마 캠프를 대표하는 이 구호는 그날 노래로, 환한 표정으로, 함성으로, 환호로, 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시민들의 들뜬 몸 그 자체로, 거리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기대를 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변화가 세계 질서의 한 흐름이 되어 내가 살고있는 나라의 현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그러나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2009년 1월 20일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날이기도 했지만, 한국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 옥상에서 재개발에 반발하던 철거민들이 망루 농성을 벌이다가 갑자기 난 불에 산화한, 이른바 '용산참사'로 불리는 사건이 발생한 날이기도 했다는 것을요.

 

 

그후, 8년

지구 한편에선 "Yes, we can"을 구호로 삼은 지도자가 취임하고, 또 다른 한편에선 권력과 결탁한 자본에 의해 사람이 불에 타 죽어가는 현실. 그 후자의 현실 속에서 저는 대학생이 되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입시전쟁의 긴 터널을 뚫고 대학생이 되어 공부한다면 최소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무참히 느꼈던 입시경쟁교육의 모순,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효율과 성장, 자본의 축적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계,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전에 불평했던 이런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뜻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속한 사회가 부조리하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도 있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학교 수업을 선택해 듣고 인디고 서원에서 여러 공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공부 속도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용산참사를 지나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 밀양송전탑 갈등,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적인 관념, 즉 생명보다 금전적 이익이, 타인의 고통보다 나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관념을 가장 아프게 드러낸 세월호 참사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고 8년이 지나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죠.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여전히 수능이 끝나면 몇몇 청소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공동의 선 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관념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확고히 자리 잡아 가는 듯했습니다. 그 가운데 정세청세는 꾸준히 성장하며 더 많은 청소년이 참여하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모순이 커질수록, 그에 맞서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들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촛불의 시간과 시민권력

그런데 작년 가을,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권력자들의 비리와 정경유착은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바였지만, 그것의 민낯이 명백하게 드러난 순간, 그 적나라한 부패의 실상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에 분노한 시민들의 행동력이었습니다. 매주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대표하는 구절이 거리 곳곳에서 울렸습니다. 시내 한복판을 흐르는 도도한 시민의 물결 속에 저도 섰습니다. 평소에는 차로 빽빽한 8차선 도로의 한가운데서 헌법 제1조를 복창하며, 부정한 권력자를 규탄하는 구호를 당당히 외치며, 나는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국가의 주권자로 규정된 시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들려왔죠.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까요? 8년의 시차를 두고 두 나라에서 엇갈려 일어난 민주주의의 승리와 패배. 그런 생각을 할 때쯤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의 고별연설을 보았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저는 보통 사람들이 참여해서 변화를 요구할 때만 변화가 일어난다고 배웠습니다. 여러분의 대통령으로서 8년을 보낸 뒤에도 아직도 그것을 믿습니다. 이건 저 만의 믿음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우리 미국인들의 이상 즉, 스스로를 통치하는 대담한 실험입니다.

(...)

우리의 민주주의를 불안해하면서 지키려 애쓰는 수호자가 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이 위대한 나라를 끊임없이 애써서 개선하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이 즐거운 임무를 껴안으십시오. 주어진 모든 외견상의 차이점에도 우리는 모두 사실상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인 시민이라는 똑같은 자랑스러운 역할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 선거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작은 이해가 걸려있을 때만이 아니라 일생의 전 기간에 걸쳐 그렇습니다.

(...)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네, 우리가 했습니다.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연설을 듣고 저는 제가 생각했던 역설이 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에 아이러니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도 패배도 없습니다. 다만 더디게라도 끊임없이 진보해온,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평등과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요구하고 그 시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것, 세계를 끊임없이 애써서 개선하는 일, 즉 역사의 진보라는 이 즐거운 임무를 껴안는 결단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 우리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도 부패척결도 교육혁명도 아닌, 이 모든 것이자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주체인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 비로소 오바마의 "Yes, we can"이 저를 부르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구호를 넘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세계 공동체의 개선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요청이었습니다.

 

 

선한 의지가 계승된다는 확신

이젠 제가 외치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리고 동료시민들에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우리만이 할 수 있다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지도자, 우리가 염원하던 그 변화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아니, 시작도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전해져 오는, '시민'이라는 말이 전해지지도 않았던 오랜 시절부터 존재해왔던,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것을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실현하겠다는 선한 의지의 계승입니다. 오바마는 연설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에 의해 삶과 자유, 행복 추구 사이에서 어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자명하지만 한 번도 저절로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도구를 이용해 더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저는 여러분이 믿기를 간청합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저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의 제헌 헌법에 쓰인 그 신념을 지키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노예들과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속삭였던 그 생각,

이민자들과 정착민들, 정의를 위해 행진했던 사람들이 노래 불렀던 그 정신, 외국의 전장에서 달의 표면에까지 깃발을 심은 이들이 재확인했던 그 신조, 그들의 이야기가 아직 쓰이지 않은 모든 미국인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신념입니다.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우리의 헌법에도 그러한 신념이 새겨져 있습니다. 건조한 문장으로만 읽혔던 헌법 조문들을 새롭게 읽으면서 그 구절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신념에 찬 외침을 듣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구절이 국가 최고법에 명문화되기까지 수백 년간 노비로, 신민으로 살며 투쟁했던 보통 사람들의 신념이 내 가슴 속에도 있습니다. 그 신념을 계승하는 방법은 그들의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라는 도구를, 아직 완전히 실현된 적이 없는 그 가치를 이 땅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2017년 정세청세의 주제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기술"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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