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들

​[제92회] 이만열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3-09 13:10 조회194회 댓글0건

본문

 

세상을 바꾸는 방법

 

 

정리 <인디고잉> 편집진

 

 

2016년 10월에 시작한 촛불집회의 1주년이 되던 날, 이만열 선생님과 함께하는 제92회 주제와 변주가 열렸습니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적폐세력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시민들은 전국 각지의 드넓은 광장에서 만났고, 결국 새로운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실제로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이들이 수사를 받고 구속되는 등 잠시 동안 사건은 해결되는 듯 보였습니다. 대통령도 한 차례 바뀌면서 대한민국은 희망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세상의 부조리는 보란 듯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한 편에서는 비리에 대한 처벌이 너무한 것 아니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촛불집회의 목적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그것은 우리가 지속하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일찍이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온 이만열 선생님을 모시고,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만열 반갑습니다. 이만열입니다. 청소년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저는 벌써 50대입니다. 60대, 70대 어른들이 여러분을 많이 실망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정말로 새로운 세상과 미래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다른 유명한 누군가를 기대하지 마시고 스스로 자기 손으로 새로운 한국을 만드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원래 예일대학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다가오는 시대에 세계 사회에서 중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어를 배우는 방법으로 문학을 공부하는 게 가장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중국과 중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동안 일본에서 공부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어는 외국어 중에서 가장 못하는 언어였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깨달았고, 제가 한국에 정착하여 살았던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어느 정도 한국어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가진 진정한 힘

1954년, 한국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의 GDP 경제 규모와 비슷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대한 소개를 들을 때면,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고, 열심히 빨리빨리 일하고, 김치를 먹어서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이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한국은 1954년에 소말리아 같은 나라였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지금 이룬 성과를 말할 때 1950년 6.25전쟁 이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국이 이룬 모든 업적이나 성과는 최근에 일어난 것이라고 평가하는 겁니다.

그 배경을 생각해보면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이렇게 교육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추상적인 주자학이나 유교 사상에 집착해서 자기 힘으로 근대화에 실패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본이 와서 도와줬다”고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역사를 쓰고,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이 도와줬다는 말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조선 시대에 대한 비판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유교 사상이 실패했고, 한국은 자력으로 근대화, 산업화에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를 비롯한 몇 명이 한국의 근대화를 만들었다’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당시에 미국은 세계의 많은 나라를 원조했지만, 원조를 받아 성공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이 성공한 이유는 박정희나 몇몇 인물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갖춰온 아주 우수한 행정과 교육제도 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발전은 최근 50~60년 사이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훨씬 오래된 것이지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말입니다. 기적은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선물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의 노하우는 아주 오래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카이스트에 갔다 왔습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여명’이라는 설명에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과학기술은 1970년대에 시작한 것입니까? 그전까지는 한국 과학 기술은 없었나요? 어떤 의미에서 14세기의 한국은 세계적으로 아주 완벽히 앞서가고 있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기했습니다. 신화를 만들어내고, 50년이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성공했다는 것은 멋진 말일 수는 있지만, 일종의 거짓말입니다. 사실 이미 한국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와 노하우가 있었으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Don’t get mad! Organize!

차분하게 조직하라


 

지금 한국 사람들은 민족성이 아주 강합니다.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국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이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기는 결코 한 민족만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태극기에는 우주의 원칙과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적입니다. 태극은 조선 시대 이전의 철학이며, 이미 보편적인 가치관을 강조해왔습니다. ‘인문학’하면 스티브 잡스 밖에 떠올리지 않는 지금이지만, 이미 한국은 훌륭하고 뛰어난 철학과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60~70년대 사람들은 지금은 오히려 잘 하지 않는 그런 인문학 공부를, 한국 과거의 역사, 문학, 철학을 연구했습니다. 그것이 가진 의미는 아주 큽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방법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공부하는 것이 여러분의 역할입니다. 촛불집회 1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Don’t get mad! Oraganize!” 무슨 뜻인가요? “차분하게 조직하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대단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수동적입니다. 이것을 바꿔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과 지구를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평생 함께하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 돕고, 열심히 일하며, 우리 동네와 우리 지구를 위해서 함께하자”고 맹세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드릴 말씀은 이게 전부입니다. 힘들지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곳에서 멋있게 발표하고, 화려하게 토론하고, 제 책을 많이 판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입니다.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지금 우리 시대에 대한 답답한 느낌을 주고, 무언가 변화를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고

스스로 공부하라

요즘 매체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언론이 정말 많이 죽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뉴스에서 현안에 관한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언론과 매체를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스스로 자기 신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우리 사회는 점점 망가지고 있어요. 겉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서로 교류하지 않고 있어요. 인간관계는 사막입니다. 서로 실제로 만나지 않습니다. 고작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는 게 전부입니다.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내 주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맹세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기술들을 우리 의지로 쓰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언론과 매체에 너무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만든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중요한 것들을 사람들과 나눈다고 결의하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인이나 기업인에게 크게 기대해선 안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한국이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몇 가지 중요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수 정권이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10년간 집권하던 보수 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큰 변화는 아닙니다. 두 번째는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960~70년대 한국은 여러 원자재를 수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되파는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을 도입했습니다.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시스템도 이제 거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원자재와 농산물을 싸게 구입할 수도 없고, 그걸 가공하여 비싸게 팔 수도 없습니다. 조금 더 생각하면 해외에서 수입하고,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땅에서 필요한 물건은 여기서 생산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제로 나아가는 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이 마치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미국이 국제사회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로 세계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건 1940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처하고 국제회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는 아주 강력한 고립주의의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1915년 이전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트럼프와 같은 사람이 나타났는데요. 미국은 이전처럼 이런 고립주의로 돌아설 것입니다.

네 번째는 아편 전쟁의 주기입니다. 아편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아시지요? 1840년대 대영제국이 중국과는 무역적자에 있었습니다. 영국은 중국에서 차, 도자기, 목재, 공예를 수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영국의 물건을 원하지 않았어요. 거듭된 적자를 보며 영국은 중국에 마약을 팔려고 했습니다. 이것을 중국이 문제 삼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석탄 중심의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은 무기와 산업의 기술적 격차로 중국에 승리했습니다. 이후 세계 무대에서 동양은 퇴장하고, 서양이 핵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6세기, 17세기에 한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선진국인지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아편 전쟁은 아주 큰 변화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에는 문제도 많습니다. 하지만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교육수준도 높습니다.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에게 익숙한 시대는 끝났어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석기 시대의 주기입니다. 인간의 문명은 돌로 도구를 만들어서 쓰는 습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지요.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은 그때는 인간의 시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이 존재해왔으며, 도구를 사용한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도구를 쓰지 않았어요. 인간의 발전사를 보면, 전체 인간의 역사 속에서 물건을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이제 우리는 스스로 도구를 만들지 않습니다. 기술이 너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현대 사람은 4~5만여 전의 인간과 똑같습니다. 그때는 물건이나 도구 만들지 않고 열매 먹고 토끼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마찬가지죠. 이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더욱 큰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민 정책과 인문학


 

사람들이 “왜?”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 질문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너무 이상합니다. 마치 우민 정책이 지금 시대에도 시행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은 TV 방송을 많이 보고, 신문 기사도 많이 읽습니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은 잘 던지지 않습니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민 정책이 무슨 뜻인가요. 바보 같은 정책? 바보 같은 사람을 만드는 정책인가요? 엄밀하게 말하여 우민 정책은 아주 오래된 정치 전략입니다. ‘우민’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으로 보면 게임만 하거나, TV에 빠져 살거나, 영화만 보면서 거기에 만족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나라와 세계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 즐기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게 우민입니다. “왜?”라는 질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왜?”라는 질문은 힘이 있고, 가장 희망이 있는 질문입니다.

한국의 정치를 생각할 때 가장 큰 위기는 인문학의 죽음입니다. 오히려 70~80년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문학이나 철학, 역사를 전공했고, 인문학을 공부했습니다. 독일 문학, 프랑스 문학, 러시아 문학, 고대 유럽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인문학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모든 학과가 직업만 생각하고 있고, 직업을 위해서는 인문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도 다른 과목을 들어야 하는 것이죠.

올해 제가 소속된 대학에서는 경제학, 경영학, 금융과 관련한 과목이 필수 과목이 되었습니다. 인문학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인문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약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방송에서 소개하는 정보들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쓸지 추측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사람들이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할 수 없습니다.

문학을 많이 읽으면, 자기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직업, 다른 나라의 삶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지요. 철학을 공부하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으면, 바보 같은 언론에만 나오는 우민 정책을 따르고, 무엇이 중요한지 알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성이 만드는 선한 영향력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대단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축하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여성들은 많은 기업이 만드는 소비문화의 타깃이 됩니다. 기업들은 여성 중심으로 화장품, 성형 수술, 옷이나 가방 등 여러 가지 물건을 팔려고 합니다.

또한, 사회적 인식도 문제입니다. 여성이 성공하려면 육체적으로 아름다워야 하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외모부터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분명 여성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듭니다. 여성을 바라보는 많은 기준이 왜곡되었어요. 광고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어선 안되지요. 여성이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광고가 아니라 여성이 자신을 갖고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역사를 만들어온 여성은 계속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조그만 용기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아프고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할 만합니다. 외모가 아니라 능력이 뛰어난 훌륭한 여성 리더가 많이 탄생해야 하며,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
 

촛불집회가 1주년이 되었지요. 저는 한국 사람들의 촛불집회와 의식 있는 행동이 매우 좋습니다. 하지만 일시적이지 않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가려면 5년, 10년, 100년이 갈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촛불을 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상적인 습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스스로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과 함께, 개인의 경험을 넘어서는 인간 문명의 세계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소중한 의무가 있으며, 이것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깊이와 중요성을 더합니다. 한국과 세계를 위한 변화는 죄인을 감옥에 넣고 특정 공약을 내건 정치인을 선출한다고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회에 임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서로를 착취하고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게 만드는 건강치 못한 패턴을 우리의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정치에서 탐욕과 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최순실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뉴스에 보도된 그들의 극단적 잘못의 흔적을 우리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무차별적 소비문화와 비윤리적 사고에 경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재벌이나 정치인이 저지르면 더욱 두드러져 언론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뿐, 우리 또한 비슷한 행동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진지하게 물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고, 문화와 습관을 바꾸는 데 필요한 혁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 일터를 청소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 우리 자신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주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무시하지 않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행동만으로도 사회를 구성하는 결을 바꿀 수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소중한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항상 컵을 휴대하며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거나 포장지와 비닐봉지, 종이백, 냅킨 등 기타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원을 절약하는 습관을 주변인에게도 용기 있게 권한다면 더욱 좋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기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을 보여준다면 이해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교육을 바꾸는 방법


 

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알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를 들어 “모든 학생이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스 보이콧’과 같은 보이콧 운동이네요.

우리는 학교에 가는 대신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교육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60~70년대 일본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모두 성공했다고 할 수 없지만, 임팩트는 컸습니다. 모두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방법이고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머릿속에서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자신있게 가능성을 컨트롤 할 수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교육은 옛날 산업화 시대의 모델을 바탕으로 하는 측면이 많습니다. 실제로 지금 고등학교, 대학교는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일자리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실컷 교육을 받고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에서 고등학교나 대학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기 능력으로 세상을 파악하고 경제나 사회 문화적인 모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 힘으로 예측하고 그걸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어요.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것이 학교나 기업이 시키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작은 맹세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5명의 학생이 있다고 해보죠. 이들은 아주 열심히 시험공부 하여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기업에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고, 믿을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다 경쟁자였습니다.

다른 5명은 처음부터 학교에서 시킨 것은 무시하고 우리끼리 맹세하여 우리는 한평생 같이 도와주고 노력해서 함께 진리를 추구하고자 노력하겠다고 약속합니다. 5명이서요. 10년에서 20년이 지나면 어느 쪽이 유리합니까. 처음 한 쪽에서는 좋은 기업에 취직했지만, 2~3년 후면 기업이 망하거나 실업자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되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친한 친구, 믿을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독하게 됩니다. 그런데 반대쪽에서는 좋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한평생 도와서,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교하면 이편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